2023년 2월 16일
(편집자 주: 이 기사는 연합감리교뉴스가 교파와 종교, 인종과 성별을 초월하여 소외된 사람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과 소외된 지역의 사람들을 심층 취재해 소개하기 위해 마련한 <이 사람을 소개합니다> 시리즈의 두 번째로, 퀴어 문화 축제에 참석해 축복식을 집례했다는 이유로 기독교대한감리회에서 정직 2년을 선고받은 이동환 목사(영광제일교회)와의 인터뷰를 정리한 글이다. 이 인터뷰는 최종심이 나오기 전인 2022년 9월 서울에서 진행되었다.)
본인을 소개해주시겠습니까?
이동환 목사로 대한기독교감리회 경기 연회 소속 목사로, 현재는 ‘한국교회를 향한 퀴어한 질문’ 큐앤에이(이하 큐앤에이Queers and Allies)에서 대표로 섬기고 있습니다. 큐앤에이는 크리스천 퀴어-앨라이(Queers and Allies) 운동을 중심으로 모든 존재가 환대받고 긍정되는 한국교회를 만들어 나가기 위한 단체입니다.
큐앤에이에서 활동하게 된 계기는 무엇입니까?
저는 소위 문제아라 손가락질받던 말썽꾸러기들을 대상으로 사역을 했습니다. 청소년 20-30명가량 되던 친구들이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로 나가면서 교회를 떠나 4-5명을 데리고 목회하기도 했습니다. 또 저는 목회와 더불어 실생활에서 예수님을 따르는 일에 관심을 두고 해고 노동자들과 함께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래서 대략 8-9년간 빠지지 않고 화요일과 목요일에는 그들의 집회 현장을 찾아가 기도회를 인도했는데, 그중에는 동양시멘트와 파인텍 해고 노동자들의 모임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해고 노동자들과 기도회를 갖고 예배를 드리던 2014년의 어느 날, 그분들 중 한 분이 저에게 자신은 성소수자라고 밝혔습니다. 저는 해고 노동자들의 어려움을 함께 나누고, 그 문제에 저의 모든 관심을 쏟아붓던 터라, 성소수자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어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라 무척 당황했습니다.
저는 동성애를 죄라고 배웠지만, 그분이 성소수자라는 사실을 알기 전에는 그분과 전혀 문제가 없었기 때문에, 그것을 알게 되었다고 갑자기 그분을 다르게 대할 수가 없었습니다. 무엇보다 그날 이후 성소수자에 대해 좀 더 관심을 가지고 성경을 공부하고, 심리학과 의학을 공부하면서 저의 편견은 서서히 깨져갔습니다.
제가 성소수자 이슈로 고민하고 기도하는 동안 2015년 기독교대한감리교 교리와 장정 3조 8항에는 ‘마약법 위반, 도박 및 동성애를 찬성하거나 동조하는 행위’를 처벌한다는 규정이 추가되었습니다. 2015년 미연방대법원에서 동성애 결혼이 합법화되면서 교회가 위기감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이런 조항을 교단의 법에 넣은 것은 한국 교회에서 기독교대한감리교가 최초였습니다.
그 일로 저는 성소수자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두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감리교회의 그 결정에 반대하던 사람들이 모여서 만든 그룹인 <감리교 퀴어함께> 와 같이 공부도 하고, 퀴어문화축제에도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2019년 8월 31일 인천 퀴어문화축제가 열렸는데, 그 모임 이틀 전에 주최 측에서 제 아내를 통해 축제를 축복해달라는 연락이 왔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저를 영광제일교회 담임 목사라고 소개하는 대신 <감리교 퀴어함께> 소속 목사로 웹 포스터에 소개하면서, 전화와 메시지가 넘쳐났고, 축복식 날에도 사람들이 사진과 영상을 찍는 등 엄청난 호응을 불러일으켰고, 이에 목사가 성소수자들을 축복한다는 비난과 함께 교단 재판에 회부되었습니다.
저는 한국기독교장로회 소속의 임보라 목사(당시 섬돌향린교회 담임)와 성공회 소속의 김돈회 신부(인천나눔의집)와 함께 축복식을 거행했고, 그 자리에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다 동등한 사람들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하신다. 하나님의 사랑이 온 세상에 퍼질 날이 올 것이다.”라고 했는데, 그것은 매주 우리 교인들을 축복하는 내용과 똑같았습니다.
이 과정이 쉽지 않을 텐데 어떻게 지내고 있습니까?
심사위원회에서 심사를 받고 재판받는 과정이 쉽지 않았습니다.
심사위원회에서 선배 목사님 10분 정도가 질의는 하지 않고, ‘동성애는 죄입니다. 다시는 그런 행위를 하지 않겠습니다.’라는 각서를 쓰라고 했습니다. 각서를 안 쓰면 목사직이 위태롭겠구나 하는 생각과 더불어 나의 사상을 바꾸겠다고 다짐하는 사상전향서를 내라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때 제 아내는 저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역사를 봐라. 비록 지금 우리나라의 상황이 이렇지만, 분명히 30-100년이 지나면 달라질 것이다. 한국 교회가 부끄럽게 느낄 그날에 부끄럽지 않은 목사가 돼라.”
그 말에 저는 저의 목사직을 지키는 것보다 하나님 앞에서 양심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고, 또 저의 마음을 정하는데 결정적인 작용을 했습니다. 우리 교회에도 성소수자가 있는데, 제가 어떻게 교인을 부정하는 말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래서 각서 대신 제 마음을 담은 편지를 써서 그분들에게 보냈습니다. 하지만 그분들은 저에게 왜 각서를 쓰지 않는지를 추궁한 후, 저의 신학적 입장에 대한 리포트 작성과 또 다른 재판 출석을 요구했습니다.
재판 중에 힘들었던 것은 가깝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연락해서, “그러지 마라. 왜 굳이 사서 고생을 하느냐.”, “네가 하는 행동이 감리교에 분란을 일으킨다.” 등의 말을 하는 것을 듣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너 때문에 너를 도와주려는 사람들을 위태롭게 하지 마라.”라는 말을 들었을 때 가장 가슴이 아팠습니다. 또 일부 젊은 목사들에게 “이 목사를 지지하는 너도 재판에 회부하겠다.”라고 탄압과 협박을 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앞에서 말한 제 아내의 협박(?)과 격려가 큰 힘이 되었고, 저에게 이런저런 정보를 알려주고, 충심으로 조언해준 목사님들도 계셨습니다. 숫자는 적었지만, 자신의 이름을 밝히고 저의 행동을 지지하는 성명서를 내주었던 동기들도 있었고, 일부 감리교 목회자분 중에도 저를 지지하는 성명서를 내주신 분이 있었습니다. 더불어 “재판이 잘못되었다. 사상 검증, 종교탄압을 중지하라.”고 성명서를 보내준 연합감리교 목회자들과 평신도들과 캐나다 UCC 등도 제게 큰 힘이 되었습니다.
왜 한국 교회가 동성애에 대한 거부감이 심하게 표출한다고 생각합니까?
한국 교회는 1990년 말까지 급성장해왔습니다. 그런데 2000년대 이후, 정점을 찍고 하락세에 접어들자 한국 교회에는 노인들만 남게 되었고, 한국 교회가 위기라는 말이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인구 감소, 교회 세습, 목회자들의 성 추문과 공금유용 및 재산 문제들이 터지면서 오히려 사회가 교회를 걱정하는 상황에 이르렀고, 사람들이 교회에 실망하고 떠나기 시작했습니다. 이를 대처하기 위해 교인 감소로 인한 교회의 쇠퇴를 바라보며, 자기 성찰과 반성을 하는 대신 한국의 보수 교회들은 교인들을 결속시키기 위해 마녀사냥식으로 종북몰이, 이슬람 난민 공격, 동성애 등을 공격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기대와는 달리 그와 같은 시대착오적 행태에 실망하고 젊은이들의 탈 교회 현상은 더욱 심화되고 있습니다.
특히 동성애를 허용하면 교회가 무너지고 한국 사회가 와해된다고 주장하며, 근본주의 신앙을 가진 교회 내 세력과 보수 정치세력이 연대해서 만든 프레임이 차별금지법 반대 운동입니다.
성소수자들과 함께 목회하면서 바라본 ‘한국 사회에서 성소수자로 살아가기’는 어떻습니까?
한마디로 굉장히 힘듭니다. 일단 동성애에 대한 혐오와 편견이 너무 강합니다. 동성 간의 사랑을 이해하지 못하는 정도가 아니라, 동성애를 성범죄나 강간 아니면 에이즈 등과 동일시하고 있습니다. 그런 혐오감 때문에, 벽장에 숨어 지내는 사람도 많고, 죄의식과 사회적 편견을 이기지 못해 정신질환을 겪는 사람도 많을 뿐 아니라, 성소수자의 자살률 또한 매우 높습니다.
그런데도 교단 내 최고의 지도자 중 한 분은 자신도 미국에서 공부했지만, 한국에서 동성애는 시기상조고, 지금이 아닌 아마도 자기 아들 대에서나 가능하지 않겠느냐고 말씀하십니다. 대체 누구의 입장에서 시기상조입니까?
소외되고 아웃사이더로 고통받는 사람들에 대한 이해와 열린 마음은 교회보다 일반인들이 더 큽니다. 문화 매체가 점점 성소수자를 받아들이면서 거부감도 줄어들고 있고요. 제가 2000년 초반 학번인데, 학교 분위기도 달라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교회는 일반인들보다 더 편협합니다. 성소수자들이 마음 편하게 예배드릴 수 있는 교회가 한국에는 거의 없는 안타까운 상황입니다.
기독교대한감리회에서의 재판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요?
2019년 9월 고발당해, 2020년 10월 16일 2년 정직에 700만 원 벌금과 재판 비용을 내라는 판결을 받았습니다.
제가 항소해서, 재판이 진행되다가 2022년 7월 중순에 재판 절차에 대한 문제를 저희가 제기했고, 재판부가 이를 받아들여 현재 휴정된 상태입니다.
이 재판은 감리교 역사에 매우 중요한 재판이 될 것입니다. 성소수자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왔고, 신학적 토론의 기회를 만들었으니까요.
(편집자 주: 인터뷰 약 한 달 후 2022년 10월 20일 기독교대한감리회 총회재판위원회는 이 목사의 항소를 기각하고 재판 비용은 항소인의 부담으로 한다고 선고했다.)
재판을 받으며 어려움이 많았지만, 감사하고 축하할 만한 것이 있었다면 그것은 무엇이었나요?
제가 재판에 회부되면서 감리교 50-60대 목사님들 중 150여 분이“혐오와 차별을 넘어 소통과 존중, 이해와 사랑이 가득한 세상이 바로 천국임을 믿으며 에큐메니컬 정신에 따라 열린 마음으로 연대하며 나갈 것이다.”라고 선언하고, 차별을 넘어서는 감리회 모임인 <차별너머>라는 조직을 만들어 페이스북과 홈페이지를 통해 감리교 내 성소수자 문제를 고민하는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감리교 안에 약간의 숨 쉴 틈이 생긴 것이지요.
감리교 내에 가라앉아 있던 성소수자 동성애 이슈가 수면위로 올라와서 서로 신학적인 토론과 경합을 한다는 사실이 반갑고, 또 이 사안에 대해 열린 자세를 취하는 젊은 신학생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다는 사실이 감사할 뿐입니다.
무엇보다 성소수자 교인들과 가족들이 전화와 SNS를 통해 자신들에게 살아갈 용기를 주었다고 이야기할 때, 부족한 제가 그분들에게 위로와 힘이 될 수 있었다는 것이 목사로서 감사했고, 저도 힘이 났습니다.
당신은 활동가인가요, 목회자인가요? 아니면 둘 다인가요?
저는 목사입니다. 10여 년 동안 노동자들과 성소수자 인권 운동을 하고 있지만, 늘 저는 예수님의 삶을 따르고자 하는 마음을 근본에 두고, 목사의 정체성을 가지고 활동하고 있습니다.
한국 교회 안에서 활동하는 이유도 교회를 바꿔야 한다는 사명감 때문입니다. “교단을 나와라,” “감리교에서 나와라,” “밖에서 할 일이 얼마나 많으냐” 등의 제안도 수없이 받고 있지만, 저는 교회를 사랑하고, 제가 서 있는 이 자리를 변화시키기를 원합니다. 따라서 교회에서 쫓겨나지 않는 한 변화를 위해 교회 내에서 노력할 것입니다.
앞으로의 본인 사역의 꿈과 비전과 목표는?
예수님이라면 성소수자들을 어떻게 대하셨을까요? 제가 현장에서 느낀 가장 가슴 아픈 일은 폐쇄적인 교회를 견디지 못하고 떠나는 사람과 교회를 사랑해서 떠나지 못하면서 속앓이하는 사람들도 매우 많다는 사실입니다. 제가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은 성소수자를 차별하는 법을 바꾸고, 그들의 인권을 보호하며, 성소수자들이 마음 놓고 예배드리고 신앙생활 할 수 있는 교회 환경을 만드는 것입니다. 비록 이 일을 이루어내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저는 그들과의 목회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연구하고 또 실천해내고 싶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제가 섬기고 있는 단체를 통해 크리스쳔 퀴어들을 잘 보듬고 싶습니다. 저는 목회자로서 제가 섬기는 <큐앤에이>를 통해, 그들이 숨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는 사역들을 계속 해 나가려고 합니다.
인터뷰 후, 이동환 목사의 항소가 기각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이 목사는 기자 회견을 열고, “기감 총재위 측이 재판 과정을 언론 비공개로 처리해 공개재판을 받을 권리가 침해됐고, 이 목사의 징계 근거인 기감 교리와장정 제3조 8항이 형법상 ‘죄형법정주의 원칙’에 위배됐다.”라고 주장하고, 사회 법정에 징계 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한다고 밝혔다.
이동환 목사 또는 <한국교회를향한퀴어한질문큐앤에이>에 연락하려면 qnaoffice2021@gmail.com으로 하면 된다.
<이 사람을 소개합니다> 시리즈 보기